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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2. 17.) “금산교회

 

지난주 집회한 김제노회 동부시찰 산하에 금산교회가 있었습니다.

금산교회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 예배당이 있는 교회입니다. 금산교회가 유명한 것은 자 예배당이 있어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본이 되는 신앙의 선배들이 있어서 유명한 교회입니다. 금산교회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 이야기입니다.

 

1904년 봄 말을 타고 전주에서 정읍을 왕래하며 복음을 전하던 테이트’(한국명 최의덕 1862-1929)선교사는 용화마을의 제일가는 부자였던 조덕삼의 호의로 금산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이자익6세 때 부모를 잃고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고향인 남해를 떠나 걸어서 금산까지 왔는데 첫눈에 이자익의 영특함을 알아본 조덕삼은 그를 마방의 마부로 일하도록 했습니다. 무학의 이자익은 고개 너머로 배운 천자문을 줄줄 외웠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조덕삼이 비록 자신이 부리는 머슴이지만 아들(조영호)과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신앙생활도 같이 했습니다. ‘조덕삼이자익이 함께 믿음을 키운지 3년이 지난 1907년 금산교회는 장로 장립투표를 했는데 묘하게도 두 사람이 후보에 올랐고 신분의 양극화가 뚜렷했던 그 시절 주인과 머슴이 경쟁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투표결과는 이자익이 주인을 누르고 장로로 선출된 것입니다. 술렁이는 성도들을 향해 조덕삼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금산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그를 뽑아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자익은 장로가 된 뒤 테이트선교사를 대신해 교회 강단에서 설교했고 조덕삼은 교회바닥에 끓어 앉아 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집에서는 이자익조덕삼을 주인으로 성실히 섬겼는데 조덕삼은 자신의 머슴을 장로로 섬겼을 뿐만 아니라 그가 평양에서 신학을 공부 할 수 있도록 지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덕삼은 그로부터 3년 뒤 비로소 장로가 됐습니다. ‘이자익은 주인의 배려로 훗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어 1915년 금산교회 2대 목사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조덕삼이자익을 담임목사로 정성으로 섬겼고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자익목사도 역시 사랑으로 성도들을 돌봤고, 교단에서 세 번씩이나 총회장을 지내는 한국교회사의 거목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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