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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서 개척된 교회입니다.(17:1-10)

데살로니가는 데르마이크만에 위치해 전략적 요충지였고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내륙의 풍요로운 농경지를 동쪽에 있는 육로와 해로에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키케로(Cicero, B.C.106-43)는 이곳을 '우리 영토의 심장부'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인구 약 20만의 도시로 정치, 경제의 중심지여서 자연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며 유대와 유사한 점이 많았습니다(살전2:14-16).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이곳을 발칸 반도 전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보았습니다(살전1:7,8). 그러므로 그들은 빌립보에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빌립보에서 160km나 떨어져 있는 이 도시에 사력을 다하여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폭도들에게 쫓기어 데살로니가를 떠났을 때에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 계속 남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폭도들을 피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약 400km 정도 떨어진 아덴에 이르렀을 때(17:15) 디모데는 그에게 달려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당면한 여러 가치 어려운 일을 보고하였고, 바울은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서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주의 복음을 전하였는데(18:1-4, 11), 이때 디모데는 다시 고린도로 바울을 찾아가 데살로니가 교회가 짧은 역사에 비해 신앙 생활에 모범을 보이며 박해를 받는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켜나간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 사이에 종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만연함으로써 신앙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더욱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을 할수 있도록 격려하고, 동시에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그들이 보다 건전한 신앙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배려(配慮)하는 입장에서 본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열매가 있는 교회입니다. (살전1:3-4)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삶속에서 '믿음''사랑''소망'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기뻐하며 이러한 열매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복음의 능력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살전1:5)

능력과 성령과 확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서 능력은 외적 현상이고, 확신은 내적 요소이며, 성령은 능력과 확신의 원동력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외 아가야 지방 교회들의 본이 된 교회입니다.(살전1:6-7)

데살로니가에는 처음부터 복음에 대한 반대가 강하게 일어났으며, 이러한 환난은 바울이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환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헬라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B.C. 146년 이후 헬라 지경의 두개의 거대한 주로서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의해 그들의 신앙을 더욱더 급속히 헬라 전 지역에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이 되었습니다. '''찍어서 생긴 표', '일격을 가한 흔적'이란 뜻으로서 '똑같이 따르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이렇게 그 지역교회의 본이 된 것은 바울이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의 순서를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궁극적으로 신앙은 주를 믿는 것이나 신앙 생활은 보다 앞선 성도를 본받는데서 향상됩니다. 그러므로 주의 복음을 증거 하는 자는 말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서 모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만일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전도자의 삶을 통해서 성도의 삶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무의미한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신앙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서 곳곳에서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는 자들이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전 4:16; 11:1; 3:17).

 

 

 

 

찬송 35, 390,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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